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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불과차'하다

    '서불과차'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서불이 지나가다' 라는 뜻이라 하네요. 거제 남부면 해금강에 얽힌 이야기랍니다.

    남부면 갈곶리 해금강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하지요. 전국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보기 위해 여름이면 차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진답니다. 한때는 해금강 유람선을 타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따라가다 보면 우제봉 천길 벼랑 아래 '서불과차'라 새겨놓은 작은 바위를 구경할 수 있었대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바위가 사라지고 없다는군요.

    '서불과차'가 새겨진 그 바위는 사라호 태풍 이전만 해도 해금강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그때 사라호 태풍의 힘은 바위도 거뜬히 날려버릴 정도였지요. 해변 가의 집들도 다 날아갔어요.

    서불과차

  • 나지막한 산들도 힘없이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요.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은 배조차도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어요. 남은 배는 선착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요. 그런 마당에 무시무시한 폭풍과 풍랑으로 작은 그 바위 또한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겠지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것이 떨어져나간 흔적만 아스라이 남아있다는군요.

    '서불과차'는 억만년을 살고 싶다는 진시황의 명을 받든 서불이 남긴 흔적이랍니다. 불로초를 구하러 해금강에 왔던 서불이 새겨놓았다는군요. 신비의 섬, 해금강에 자신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나 봅니다.

    진시황제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중국 진나라 때 황제랍니다. 산천초목도 벌벌 떨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무시무시한 권력을 갖고 있었대요. 그래서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겼답니다. 그 황제 정말미워요. 천년만년 살고 싶었고, 죽어서도 그 삶은 영원히 이어갈거라 생각했는지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자신의 무덤을 미리 만들었죠. 진시황제 무덤에서 발견된 병마용들은 자신을 지켜줄 병사들을 사람 모습 그대로 본 떠 만든 것인데, 얼마나 그 범위가 크고 넓은지 아직도 다 발굴하지 못했다고 해요. 천년만년을 살고 싶어 했는데 결국 백 년도 살지 못했어요. 한낱 제 욕심만 부려 지켜주고 안아주어야 할 백성들을 너무 힘들게 했어요. 이 정도면 그 황제의 됨됨이를 다 아시겠지요?

    서불 역시 진시황제의 신하였어요. 황제의 명으로 늙지 않는 선약이라는 불로초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거제도까지 왔지요. 과연 불로초를 찾아갔을까요? 당연히 못 찾았지요. 그런 건 애초에 없었으니까요.

  • 명을 받은 신하, 서불은 불로초를 구하러 금강산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몇 날 며칠을, 아니 그 이상의 날들을 험한 바닷길을 헤쳐 우리나라로 왔지요. 그러다 거제도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중국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조그맣고 아담한 바위섬, 해금강을 보고 깜짝 놀랐겠지요. 나 역시 몇 번을 가도 그 모습에 반하니까요. 해금강의 신비스러운 풍광에 서불 역시 반하여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 정도로 아름답고 수려한다면 이 안에 반드시 불로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동남동녀 삼천 명을 쫙 풀었어요.

    "불로초를 구하라. 반드시 구해야 한다. 이 잡듯이 꼭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구실인지 모르지만, 그 핑계로 해금강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종내 불로초를 찾지 못한 서불은 한숨을 쉬면서 그곳을 떠나야 했지요. 아쉬움 속에 한마디 남겨놓고 갔어요. 벼랑위에다 네 글자 '서불과차'를 아로새긴 것이지요.

    과연 서불은 다시 진시황제가 있는 중국으로 갔을까요? 제 생각인데요. 아마도 안 돌아갔을 것 같아요.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그냥 왔을까요? 먹을 양식과 충분한 경비를 갖고 왔겠지요. 그 돈으로 어딘가에 정착해서 마을을 이루며 삼천 명의 사람들과 잘 살았을 것 같아요. 그대로 진시황제에게 갔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테니까요. 아 참, 서불은 진시황제가 사는 무시무시한 방식을 따라가지는 않을 테죠?

출처 거제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