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어린이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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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하도

    거제도 사등면 견내량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두억포에 있는 통제영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 역할을 한 곳이었답니다. 그리고 통영군인 견유 마을에는 관해루가 있어 바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지요. 이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의 마음을 평화롭게 했어요. 그러나 거제군 쪽에 있던 무이루는 섬을 침범하는 오랑캐들이 많아 전쟁을 대비하여 감시하는 초소 역할을 했습니다. 오랑캐들의 잦은 침범으로 사람들이 늘 두려움에 벌벌 떨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거제도에는 조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군사들의 식량을 보관하고, 지금의 거제 특산물인 어패류와 표고버섯, 벌꿀, 인삼 등을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하도란 말은 고려 18대 의종과 관련이 있답니다. 고려 의종은 문인만 특별히 우대하고 무인들을 차별하였기 때문에 나라를 열심히 지켰던 무인들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무인이었던 정중부는 반란을 일으켰지요.

    전하도는 무신의 난을 피해 거제도로 피난 온 의종이 작은 통구미 배(그릇배)를 타고 건너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하도란 말은 임금인 전하가 건넜던 곳이라고 해서 전하의 두 글자에 건널 도(渡)를 붙여서 전하도라 하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어원이 변하여 견하도가 되었고, 지금은 견내량이라고 불리게 된 겁니다.

  •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조선 때 어느 한양 양반이 거제로 귀양을 왔습니다. 오랜 세월 귀양살이로 고향 생각이 났었지요.

    "저 견내량만 건너게 되면 도망을 쳐서라도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에 갈 수 있을 텐데, 견내량의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도망을 칠 수도 없구나!"
    하며 한양양반은 매일 안타까워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견내량 바다만 쳐다보면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없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지요.

    한양양반이라 노를 저을 줄도 몰라 남의 배를 훔쳐서 도망칠 수도 없고, 또 헤엄칠 줄 안다 해도 양반체면에 바다에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전하도

  • 당시 견내량은 이쪽과 저쪽 사이가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서로 빤히 쳐다볼 수도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혼자서 바닷가로 나왔던 한양양반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걸음에 팔짝 뛰면 되겠는데.'

    집을 지을 때 시렁에 걸치던 대들보 한 개만 걸치면 다리가 되어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바다에 대들보 하나만 걸치면 다리가 될 것인데···' 하면서 밤낮없이 바닷가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그러다가 한양양반은 끝내 저쪽으로 건너가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견내량'이란 이름은 그런 넋두리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전하도

출처 거제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