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출신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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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복
한자 梁命福
성별
생년월일 1921-03-05
사망년월일 1982-02-20
본적 장승포동 516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공훈록 (수록정보 : 독립유공자 공훈록)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1941년 3월초에 교내항일학생결사인 「연구회(硏究會)」에 가입하고 동회의 음악부 책임을 맡아 활약하였다.

 

연구회는 1941년 1월, 임 굉(林宏)·이태길(李泰吉) 등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민족의식 앙양과 조국독립을 위한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결사였다.

 

이무렵 이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분석하여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실력을 양성해서 독립후 각기 전문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결의했다. 또한 동회는 비밀엄수, 매월 10일 연구발표,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을 운동방침으로 정하고 1941년 2월부터 동년 3월 17일까지 6차례 모임을 가졌는데 그는 동년 3월부터 참가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원이 졸업을 하게 됨에 따라 동회는 장기적인 사업을 계획하였다. 즉 졸업 후 각기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회원들은 현지에서의 활동상황을 공문으로 위장하여 매월 1회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는 1941년 3월 동교 졸업 후 함경북도 청진의 수원공립국민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반딧불〉이 일경의 손으로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의 항일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힌 그는 혹독한 고문아래 2년여 동안 미결상태에 있다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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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복지국 사회복지과  

최종수정일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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