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출신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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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기
한자 潘英璣
성별
생년월일 1903-12-25
사망년월일 1977-04-13
본적 연초면 이목리184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8
훈격 건국포장
공훈록 (수록정보 : 독립유공자 공훈록)

반영기는 경남 통영에서 보통학교 졸업하고, 이발업에 종사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에 분개하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1927년 경남 통영에서 신간회(新幹會) 통영지회 간사로 활동하였고, 동년 3월 지한명(池漢明)·윤봉근(尹奉根)과 함께 고려공산청년회 거제도야체이카 회원이 되어 책임자 김응수(金應水)와 청년동맹 회원들을 대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하였으며, 진주에 고려공산청년회 프락치를 설치하고 점차 회원을 늘려 진주야체이카를 조직하고자 노력하였다.

1931년 5월경 조선공산당 재건설을 위한 국내공작위원회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조선공산당 공작위원회사건’은 제1차 조선공산당과 ml당 사건에 이어 국내에서 셋째로 큰 사건이다. 1928년 12월 7일에 국제공산당에서 발표한 ‘조선공산당 재건문제에 대한 지령’(12월 테제)에 의하여 1929년 3월에 만주 돈화에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후 1930년 9월, 국제적색노동조합(프로핀테른)의 ‘9월 테제’를 바탕으로 노동대중을 기초로 적색노동·농민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1931년 3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해소하고 조선공산당 공작위원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국내를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을 조직·확대하여 궁극적으로 신사회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동년 5월에 용산경찰서에 발각되어 약 1년 동안에 서울을 비롯하여 함경남북도·평안도·경상남도 각지에서 수백명의 혐의자가 체포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 중 100여 명은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동 법원 예심으로 회부되어 1933년 4월 28일까지 예심을 받았다. 강문수(姜文秀) 등 78명은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과 공무방해, 상해, 범인은닉 등으로 유죄로 결정되어 동 법원 공판으로 넘기고, 반영기는 김기태(金基泰) 등 24명과 함께 면소로 결정되어 그날 밤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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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복지국 사회복지과  

최종수정일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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