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등면 오량리

사등면 성포리

  •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으로 오양방(烏壤坊)이었는데 고종(高宗) 26年(1889) 오양(烏良)과 신계리(新溪里)로 나뉘었고 1915年 6月 1日 오양리(烏良里)로 법정(法定)되었으며 1942年 5月 1日 부락구제(部落區制)로 오양(烏良)과 신계(新溪)의 2구(區)가 되어 1961年 10月 1日 행정리(行政里)로 되었다.
오양(烏良)마을

연산(燕山) 6年(1500) 오양보(烏壤堡)와 역(驛)을 두었는데 거제현('고현(古縣)':巨濟縣)과 고성현(固城縣)의 동서 40리(里) 거리에 있는 중간지점이고 한려수도의 견내량목에 위치하여 넓은 들 고운 흙의 평지(平地)에 까마귀가 찾아오는 오양방(烏壤坊)이었으나 제107대 통제사 조경(統制使 趙儆)의 선정비(善政碑)를 역리(驛吏)와 주민이 세우니 착하고 어진 통제사를 상징하여 오양리(烏良里)로 고쳤다.

신계(新溪)마을

오양성(烏壤城)의 서북쪽 오량천 건너에 남향으로 따뜻한 새 마을이 형성되어 신계(新溪)라 하였다.

개들

신계의 동쪽 개울가에 있는 논들이다.

걸떡산

오양성안 동남쪽 절골 동쪽에 있는 산이다.

고개도(高介島)

신계의 뒷개 서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면적 62,000㎡의 유인도이다.

굴바위

절골 동쪽 욋골에 굴이 있는 바위다.

나암밖들

오양성의 남문 밖에 있는 큰 들이다.

동문마을

오양성 동문 밖의 들에 있는 마을이다.

동섬

고개섬 동남쪽에 있는 작은 고개(高介)섬의 동섬이라 하며 면적 49,851㎡이다.

동청거리들

오양성 동남쪽에 오양보(烏壤堡)가 있을때 동청(洞廳)이 있었던 곳이다.

둔덕재

절골 남쪽에서 폐왕성 밑을 지나 둔덕면 거림리로 넘어가는 큰 재이다.

땅곡고개

신계에서 등넘어 뒷개로 가는 낮은 고갯길에 당집이 있었다.

뒷개마을

신계 넘어 북쪽 고개섬 동쪽에 있는 갯마을 뒷개 후포(後浦)라 한다.

명등섬

고개섬 북쪽 옆에 있는 작은 4,264㎡의 섬인데 옛날에 불을 밝혀 한려수도를 안내 하였는데 고개등대가 있다.

못골

절골 남쪽에 연못이 있는 골짜기다.

보장등

신계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다.

부엉이바위

절골 동남쪽에 부엉이가 사는 집이 있는 바위다.

북문마을

오양성 북문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북문밖들

오양성 북문 밖에 있는 들이다.

석불암(石佛庵)

절골마을 동쪽에 있는 암자인데 1950년 고려때의 연화대(蓮花台) 위에 석불여래좌상(石佛如來坐像) 높이 92㎝를 개간하다 발굴하여 지방유형문화재 제48호(地方有形文化財 第48號)로 지정받아 이 암자에 옮기고 석불암(石佛庵)이라 하였다.

쇠죽골

신계 서쪽에서 소를 잡았다는 골짜기다.

수루산

오양 성내 북쪽에 있는 산이다.

숲거리들

오양성의 숲 서쪽 신계 서남쪽에 숲이 있는 들이다.

악몰등

오양 서쪽에서 견내량 경계에 왕의 말이 지나갔다는 등이다.

오양성(烏壤城)

연산(燕山) 6年(1500) 오양보(烏壤堡)를 두고 권관(權管)이 다스리면서 축성하였으며 둘레 1,122m, 높이 7.4m이고 지방기념물 제109호(地方紀念物 第109號)이다.

오양숲

오양성 서문의 성벽위에 한줄로 큰 나무숲이 있어 북서풍을 막아주고 여름철 정자였는데 지금은 10그루만 남아 있다.

오양역(烏壤驛)

오양성(烏壤城)에 오양역원(烏壤驛院)을 두고 찰방(찰訪)이 관리 하였으며 거제현('고현(古縣)':巨濟縣)과 고성현(固城縣)의 각 40리 지점 중간으로 복마(卜馬) 5필(匹)에 역리(驛吏) 20명(名)으로 거제(巨濟)의 유일한 역(驛)이었다.

오양저수지(烏良貯水池)

절골 동북쪽에 1959년 준공한 저수지로 오량들에 물을 공급한다.

오성골고개

오양성 동북쪽에서 청곡리로 넘어가는 일명 오성토 고개라 한다.

욋골

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대장간이 있었다하여 일명 석령골이라 한다.

용왕바위

신계 서쪽 개울가에 용 모양의 꾸불꾸불한 바위가 있다.

이남등

성내 동북쪽에 있는 산등성이다.

잔땡산

성내 동쪽에 있는 산이다.

절골마을

성안 동남쪽 우두봉 밑 골짜기에 석불암(石佛庵)과 절골샘, 절골들이 있고 절골마을이 있다.

정싱개

신계 뒷개 북쪽에 있는 포구이다.

집등앞닥산

신계마을 뒤에 있는 산이다.

찬샘

성내 동쪽 시리미에 찬물이 나오는 샘이 있다.

큰골

절골 동남쪽 우두봉 밑에 있는 큰 골짜기다.

통제사(統制使) 조경(趙儆)의 선정비(善政碑)

제107대 삼도수군 통제사(三道水軍 統制使) 조경(趙儆)이 영조(英祖) 15年(1739) 도임하여 제승당(制勝堂)을 중수하고 이순신 유허비(李舜臣 遺墟碑)를 세웠으며 충렬사(忠烈祠)의 장서(臟書)를 마련하고 애휼선정(愛恤善政)하였으니 오양역리(烏壤驛吏)들과 거제부민(巨濟府웠는데 정조 11년(1787) 5월에 도임한 제142대 통제사(統制使) 조심태(趙心泰)가 보고 아버지 선정비 임을 확인하고 주민(住民)에게 부담시켰다는 뜻으로 신계마을 아래 들판에 묻었는데 1976年 5月 31日 경지정리사업으로 발굴되어 보존관리하고 있으며 선정비(善政碑) 위에 아들이 매치비(埋置碑)를 얹어 함께 묻었던 것이다.

피왕성재

절골에서 폐왕성 밑으로 둔덕면 거림리에 이르는 고개로 의종왕이 경인난으로 피신하였으니 피왕성이라 하였다.

담당부서

  • 문화관광국 문화예술과  

최종수정일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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