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현 상동동

구신현 상동동

  •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때에는 용산(龍山)을 사동(寺洞)이라 하였고 아래의 상동(上東)은 남문방(南門坊)에 속하는 윗마을을 상동(上洞)으로 불렀으나 고종(高宗) 32年(1895) 5月 26日 상동(上東)으로 바꾸었고 1915年 용산(龍山), 상동(上東)을 합쳐서 상동리(上東里)로 법정(法定)하였다. 사동(寺洞)은 절이 없어졌으니 계룡산(鷄龍山)의 지리설(地理說)에 따라 용산(龍山)이라 하였고 상동(上東)은 고현(古縣)의 윗마을이고 남쪽에 위치함에도 상동(上東)이라 고쳤음은 알길이 없다.
상동(上東) 1동(洞) 마을

고현(古縣)의 남문천(南門川)을 경계로 남쪽에 이어지며 구천계곡(九川溪谷)으로 향하는 도로의 아래 위에 있고, 거제백병원이 계룡산(鷄龍山) 밑에 자리잡은 아래 상동(上東)이라 부르고 있다.

상동(上東) 2동(洞) 마을

1洞에서 조금 남쪽에 도로의 서쪽위에 있어 웃 상동(上東)이라 부르고 있다.

용산(龍山)마을

영조(英祖) 45年(1769) 사동방(寺洞坊)으로 마을 뒤에 큰절이 있어 절골이라 하였는데 거제면(巨濟面)으로 넘어가는 고자산치(故子山峙)의 계룡산(鷄龍山)을 오르는 곳이라 용산(龍山)이라 바꾸었다.

가매바위

상동(上東)의 동쪽 독봉산(獨峯山)에 가마 모양의 바위가 있다.

개여시바위

독봉산(獨峯山) 대문바위 남쪽에 개여시 여우 모양의 바위가 있다.

고자산재(姑子山峙)

용산(龍山) 서남쪽 골짜기에서 계룡산(鷄龍山)을 넘어 거제면(巨濟面) 동상리(東上里)로 가는 옛날의 큰 길이였으나 너무 가팔라 숙종(肅宗) 14年(1688) 계룡산(鷄龍山) 북쪽 서문(西門) 고개에서 중허리로 김실령재를 개설한 후는 통행이 적어졌다.

고현천(古縣川)

문동폭포(門東瀑布)에서 상동리(上東里)의 동쪽으로 흘러 용산천(龍山川)과 상동천(上東川)을 합쳐 고현만(古縣灣)으로 이르는 길이 5㎞의 큰 내를 한내라 하였는데 고현면(古縣面)때 고현천(古縣川)으로 바꾸었다.

누에 머리등

상동(上東)의 동남쪽 안장걸등 밑에 있는 누에 모양의 등성이다.

담배밭골

상동(上東) 동쪽 가매바위 밑에 담배를 심었던 밭이 있었다.

당산(堂山)숲

상동(上東) 동북쪽에 자그마한 산이 있고 옛날 당산제를 지냈다는 숲이 있었다.

대문(大門)바위

낙바위 동쪽에 대문 모양의 바위가 있다.

독봉산(獨峯山)

계룡산(鷄龍山)의 동쪽 고현천(古縣川)을 경계로 수월(水月), 양정리(良井里)의 서쪽이 되는 신현읍(新縣邑) 지역의 중심부에 홀로산이 있으니 이를 독봉산(獨峯山)이라하며 임진왜란때 장군이 올라가 지휘하였다는 독봉산(禿峯山)이라 전래되고 있다.

땅 골

상동(上東) 서쪽의 홈대골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서낭당이 있었다.

땅 등

땅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그 밑에 땅등의 자그마한 촌락이 있다.

땡피바위

탕건바위 북쪽에 땅벌의 집이 있었다.

뿔바위

개여시바위 서쪽에 소의 뿔 모양의 바위가 있다.

삼정자(三亭子)

상동(上東) 동북쪽에 있는 들판에 팽나무 한그루와 말채나무 두그루가 세곳에 시원한 정자(亭子)를 형성하였으니 농부들의 참을 먹거나 쉬는 곳으로 삼정자(三亭子)라 한다.

서당등(書堂嶝)

땡피바위 북쪽에 있는 등성이 밑에 서당(書堂)이 있었다.

안장걸등

허리등 남쪽 홈대골에 있는 말의 안장 모양인 등성이다.

약물바위

상동(上東)의 동쪽 송굿바위 밑에 약수터가 있었다.

얼음밭골

땅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늦은 봄까지 얼음이 녹지 않은 음지를 얼음밭골이라 한다.

용 소(龍 沼)

상동(上東) 동쪽 한내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연못이 있다.

담당부서

  • 문화관광국 문화예술과  

최종수정일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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